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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조선시대 역병(疫病) 대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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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기사입력 2020-02-13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중국 우한시로부터 출발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 내 확진자가 3만 명을 넘고 600여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다. 우리나라 역시 20여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와 정부와 온 국민들이 긴장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이처럼 전염병이 돌아 심각한 국가위기에 처한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500여년 역사에서 전염병이 돌았던 해는 무려 320년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만으로 볼 때 전염병은 무려 1,455건이나 되었다. 이 전염병으로 죽인 백성은 무려 천만 명 이상이나 된다. 현재와 같은 의료기술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전염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었다.

 

『순조실록』 1821년의 기록에 보면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전염병으로 고관대작을 비롯하여 백성들이 치료도 하지 못하고, 심한 기침과 설사를 하고 몸이 뒤틀리다가 열흘도 되지 않아 10만 명 이상이 죽었다고 하고 있다. 이때 중국에서 들어온 전염병은 바로 콜레라였다. 지금은 콜레라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지만 200년 전망 하다라도 콜레라는 죽음의 전염병이었다.

 

조선시대 콜레라만 전염병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전염병중 가장 많은 이름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괴질(怪疾)이다. 병의 근원이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름도 괴질이다. 그 괴질은 바로 장티푸스였다. 20세기 중반 이후 장티푸스는 한반도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기는 했지만 장티푸스는 콜레라와 함께 가장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위민군주 정조가 아무리 나라를 잘 다스려도 민간에서 발생되는 전염병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정조 재위 23년째인 1799년에 전라도 일대에서 장티푸스가 발병하여 한 달 사이에 무려 14만 명이 죽었다. 폭군이 아닌 성군 시절에도 전염병은 막을 수 없는 천역(天疫)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성군 정조도 막지 못하는 전염병을 조선시대 그대로 두고만 있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조선시대에 전염병을 막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최대한의 의료 기술과 공동체 문화로 극복하고자 하였다.

 

먼저 의료적인 측면을 보자. 조선시대 역사상 최고의 명의(名醫)로 알려진 허준은 『신찬벽온방(新纂辟溫方)이란 의서를 편찬하여 보급하였다. ‘벽온방’은 온역(溫疫) 즉 전염병을 막는 비방이란 말이다. 광해 임금 때 전염병이 돌면 백성들한테 전염병 예방 의서인 『간이벽온방』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하여 전국 고을에 나누어 주었다. 백성들 모두가 이 이 의서를 읽고 병에 대처하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임금과 조정의 의도는 좋았지만 너무 간략하게 서술이 되어 있어 실질적인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광해 임금은 허준에게 보다 더 구체적으로 전염병을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동의보감』 저술을 마친 허준은 『동의보감』의 내용을 보다 구체화 하여 전염병 방지 빛 퇴치 방안을 연구하고 마침내 이를 정리하였다.

 

허준은 전염병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자연의 섭리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봄에 따스해야 하는데 춥거나, 여름에 더워야 하는데 서늘하거나, 가을에 서늘해야 하는데 덥거나, 겨울에 추워야 하는데 따스하다면 반드시 전염병이 생긴다고 하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그때의 성질에 맞게 운행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이 말은 철학적인 듯 하면서 이치에 맞는 말이다. 이번에 나타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도 어찌 보면 자연의 거스른 이치 때문에 나타난 것인지 모른다. 이번 겨울은 너무 따뜻했고 강원도를 제외하고 내륙지방에는 제대로 된 눈이 한반도 내린 적이 없었다. 이러한 기후의 이상 현상이 전염병이 나타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치료법이다. 치료법은 오로지 물을 반드시 끓여먹고, 옷가지를 삶아서 입고, 몸을 깨끗하게 해야 하고 고여 있는 물을 퍼내어 깨끗하게 한다는 것이다. 고여 있는 썩은 물에서 전염병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치유법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마늘과 생강 등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 번 메르스 유행 때 김치가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하였듯이 발효된 우리 음식은 전염병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전염병의 사회적 공포를 없애는 것이다. 각 고을에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재물을 내어놓고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병으로 농사를 못 짓는 가정을 위해 대신 농사를 지어주는 등 공동체 문화를 한껏 강화하게 하였다. 가난과 질병으로 죽은 백성들을 위하여 마을에서 제사를 지내어 억울한 원혼을 없게 하는 것이 전염병을 막는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미신 같지만 이는 실제 오래전에 죽은 귀신들이 전염병 귀신을 막아 살아있는 백성들을 구제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병을 이길 수 있다는 마을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편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하 차분히 대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 한명의 사망자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특히 수원, 화성, 오산 지역의 전염병 대처는 매우 선진적이고 세계의 모범이 될 수 있다. 과장된 언론에 보도에도 차분하다. 여기에 하나 더하자면 ‘산수화(오산, 수원, 화성)’ 지역이 각각 전염병에 대처하지 말고 3개 지역이 함께 연대하여 공동의 방역체계를 구축하여 치뤘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산수화 상생 협력일 수 있다. 지금까지 산수화 지역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수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곧 깨끗하게 해결 될 것이라 확신한다.         
    
김준혁(한신대학교 교수, 한국사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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