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허행윤의 문화산책] 겨레를 사랑한 시인 홍사용, 그의 숨결이 남아있는 노작로를 찾다

거리 곳곳에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 등으로 환생된 시인의 숨결
낯설지 않은 지명에 구현된 ‘부질 없는 상상’
문학관·문화센터·미디어센터… 문화공간 어우러진 도시

가 -가 +

허행윤 기자
기사입력 2020-01-16

▲ 홍사용(1900~1947) 호는 노작(露雀)  © 수원화성신문


“신도시는 늘씬하고 나름 세련됐습니다. 하지만, 눈에 거슬리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획일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점이 그렇고, 높이와 길이 등을 자로 잰 듯, 반듯하게 맞춰 올라간 아파트나 빌딩 등도 그렇습니다.”
 
그래서일까. 대한민국 건축의 거장, 故 김수근 선생이 신도시를 설계한다고 하더라도 이보다 더 뾰족한 디자인을 제시할 수는 없을 터이다.

 

물질문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진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담보로 잃어버리거나 없어지거나, 심지어는 훼손되고 있는 소중한 것들도 많다. 외형적인 진화도 중요하겠지만 내적인 진화도 이에 못지않아야 한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는 까닭이다. 그래서 감히 이런 상상을 해본다. 신도시처럼 하드웨어가 다양하고 풍부한 공간에 문학이나 음악, 미술 등과 접목된 소프트웨어를 입힐 수 있다면 어떨까하고 말이다.

 

▲ 노작로 입구에 위치한 노작홍사용문학관. 문학관 주변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마천루들이 즐비하게 서있다.     ©수원화성신문

 

화성시 동쪽에 위치한 동탄신도시. 이 신도시 내 반석산 주위로 조성된 노작로(露雀路)에선 이처럼 ‘부질없는 상상’이 차근차근 구현되고 있다. 이슬이라는 뜻의 한자 노(露)와 참새라는 뜻의 한자 작(雀)이 결합된 노작(露雀)은 구태여 훈을 새긴다면 이슬을 맞고 있는 참새라는 뜻일 터이다.

 

노작은 일제강점기 민족 시인 홍사용 선생(1900~1947)의 호이다. 이곳은 시인의 고향이자, 시인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고장이다. 대한민국 도시 내 거리에 이처럼 시인의 호가 붙여진 거리도 이곳이 유일하다. 그것도 신도시 한복판에 말이다.

 

여기저기에 어른 주먹만 한 돌멩이들이 뒹굴고 있어 붙여진 돌모루, 아궁이에 생기는 그을음처럼 숲이 짙다는 뜻으로 마을 뒷산 기슭을 가리키는 이름인 먹실, 예로부터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됐다는 의미로 먹실 뒤쪽을 가로 지르는 도랑인 현량개….
 
이 거리를 여러 토속적인 지명들을 소재로 그려본 수채화다. 민족 시인을 배출한 고을의 정겨운 옛 지명들이 전혀 낯설지 않다. 시인은 일제의 서슬 푸른 압제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독립에 대한 의지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시인의 숨결은 그래서 거리 곳곳에서 이방인들을 맞고 있는 은행나무와 미루나무, 플라타너스 등으로 환생해 늠름하게 서있는 지도 모른다.

 

▲ 오산천 입구부터 시작되는 노작로. 초고층 아파트들이 지나가는 차량들과 시민들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다.   © 수원화성신문

 

■ 돌모루, 먹실, 현랑개, 그리고 반석산… 낯설지 않은 지명들

 

“동탄(東灘)이라는 지명도 동쪽의 여울이라는 뜻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동탄동 동쪽을 남북으로 가로 지르며 흘러가는 오산천이 바로 그 ‘동쪽의 여울’인 셈이죠.” 이곳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한 문인(40)의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래서일까.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그 마천루(摩天樓) 같은 고층 아파트와 빌딩 사이로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개여울을 잔잔하게 흐르던 시냇물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온다. 하늘에 비구름이 잔뜩 몰려오면 시냇물 소리는 어미 무덤이 떠내려 갈 것 같아 큰소리로 울어대던 청개구리들의 서러운 울음소리로 치환된다. 
 
바쁜 일상생활 탓인지 행인들이 잰 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곳은 겉모습으로는 수도권의 여느 신도시들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 보면 뒤로는 뫼를 등지고 앞으로는 개천을 둔 배산임수(背山臨水) 형세의 우리네 전통적인 풍수를 갖췄다. 동탄 신도시가 다른 신도시와 차별화되는 첫 번째 대목이다.
 
백로가 노닐었다는 현량개는 아쉽게도 반적산 그늘에 묻혀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LH 동탄사업본부 청사 뒤편을 흐르는 오산천이 현량개를 잇고 있는지도 모른다. 쪽빛 하늘을 받치고 있던 야트막한 능선과 옹기종기 붙어 있는 채마밭들도 지금은 옛 흑백 사진첩에서나 찾아 볼 수 있다. 잃어버린 풍광이 아름다운 까닭이다. 예로부터 현인(賢人)들은 추함은 아름다움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반석산 기슭도 그렇다. 소나무를 물론 느티나무와 왕벚나무 등 한반도 중부지방이  친정인 활엽수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이 산에 오르면 그윽한 나무 냄새가 먼저 버선발로 날아와 이방인들을 맞이한다. 반석산은 동탄 신도시의 허파다. 이 산은 야생동물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환경단체 조사 결과, 반석산은 멸종 위기 동물 2급으로 분류된 삵을 비롯해 천연기념물 수리부엉이, 붉은배새매 등의 서식이 확인됐던 생명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 동탄신도시 뒷편 반석산 앞을 가로 지르는 도로 중앙에 솟대를 형상화한 조형물들이 차량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반석산 너머로 초고층 아파트들이 장승처럼 서있는 광경이 이채롭다.  © 수원화성신문


오산천에서 반석산을 끼고 느린 걸음으로 걸으면, 시인의 호를 딴 노작마을이 반석산을 배경으로 아스라하게 펼쳐진다. 아직은 카페와 찻집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언젠가는 시인의 문학정신을 느낄 수 있는 노작마을만의 특성을 갖춘 공간으로 조성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노작마을 앞을 지나는 길이 바로 시인의 호를 딴, 길이 3㎞로 이어지는 노작로(露雀路)다.
 
■ 생명의 寶庫 반석산 기슭으로 펼쳐지는 노작마을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어머니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그러나 시왕전(十王殿)에서도 쫓기어 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맨 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받은 것은 사랑이었지오마는 그것은 눈물이더이다’ 하겠나이다” 노작 홍사용의 <나는 왕이로소이다>
 
반석산에는 시인의 호를 딴 노작공원이 조성됐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시비(詩碑)가 있는 시인의 묘역도 있다. 오산천 인근에는 반석산을 따라 노작마을도 반듯하게 조성돼 있다. 노작홍사용 문학관 앞을 출발, 반석산 내 근린공원까지 이어지는 길이 3.7㎞의 둘레길도 조성됐다. 

 

▲ 반석산 기슭에 조성된 노작 홍사용 선생 묘역  © 수원화성신문


노작 선생이 태어난 곳은 이곳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인 용인시 기흥구 서농동 용수골마을(옛 용인군 기흥읍 농서리 151)이다. 이곳에도 동탄 신도시가 조성되기 전까지만 해도 생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에도 아파트들이 들어서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다. 화성시 동탄동 반석산 기슭은 수원, 화성과 용인 등이 한곳에서 만나는 곳이다. 어렸을 적 시인은 이곳에서 수원 읍내까지 발품을 들여 걸어 다녔다고 한다.
 
동탄 신도시 내 반석산 기슭에는 노작홍사용 문학관을 비롯해 노작공원과 화성시 미디어센터, 동탄복합문화센터 등 노작 홍사용 시인의 문학정신을 계승하는 공간들이 잇따라 나란히 들어서 있다. 이 앞으로 지나는 길도 시인의 호를 따 노작로다. 노작홍사용문학관 뒤편 반석산 기슭에는 그의 시비(詩碑)와 함께 묘역도 있다. 노작로에 조성된 공간들은 시인의 올곧은 문학혼을 일깨워주는 클러스터다. 시민들은 이 공간들을 이용하면서 노작 홍사용 시인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을 터이다. 수도권의 여타 신도시 시민들에 비해 동탄 신도시 시민들이 문화적으로 행복한 이유이기도 하다.

 

■ 문학관, 문화센터… 노작(露雀)의 문학혼 계승하는 클러스터

 

노작홍사용 문학관 등 시인의 반듯하면서도 올곧았던 문학정신을 담은 공간들이 조성된 시점은 지난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인의 유년시절과 청년시절 3·1운동 직후 몇 년 동안 낙향해 은거했던 청년시절, 반석산과 반석산 기슭, 그리고 오산천 일대 등은 그의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곳이다. 앞서, 시인의 묘역도 반석산을 오르는 길목에 조성된 바 있다.
 
정부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외곽에 중핵 역할을 하는 거점 도시를 건설, 서울의 집중형 공간 구조를 탈피해 수도권 균형 발전을 유도하기 위해 지난 2003년부터 40만 명 규모의 동탄 신도시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신도시 조성 예정지에 대한 문화유적 등을 조사하던 중 동탄동 반석산 기슭에 노작 홍사용 선생의 묘역이 있고, 시인의 문학적 고향이었다는 점에 착안, 관할 지자체인 화성시와 협의, 노자홍사용 문학관에 이어 동탄복합문화관과 화성시 미디어센터 등을 건립했다.
 
화성시는 오산천에서 동탄복합문화센터까지 반석산 기슭에 카페와 찻집 등이 들어설 수 있는 노작마을을 조성했다. 화성시 미디어센터도 건립됐다. 특히 화성시 미디어센터는 시인이 시는 물론, 소설과 수필, 희곡과 연극 등에도 심취했던, 당시로선 멀티미디어 예술가였던 점에 착안, 만들어졌다.   
 
노작홍사용 문학관은 시인의 문학적인 업적을 기리고 시민들에게 문학교실, 창작교실 등을 운영하기 위해 반석산 기슭인 노작근린공원에 건립됐다. 지난 2008년 5월 사업비 27억 원을 들여 총 건축면적 907㎡에 지상 2층 규모로 건축됐다. 1층은 노작의 문학적 삶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전시실과 시 낭송회 및 소규모 공연이 가능한 다목적홀, 다수의 창작문학 관련 도서를 비치한 문학전문도서관 등으로 꾸몄다.

 

▲ 노작로를 걷다 보면 중간쯤에서 동탄복합문화센터를 만날 수 있다. 시민들은 이 공간을 통해 도시에서 문화를 향수할 수 있다.  © 수원화성신문


■ 시인의 문학혼 후세에 물려주는 건 온전한 시민의 몫

 

허민 노작홍사용 문학관 사무국장은 “시인의 올곧은 문학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펼치고 있다. 노작문화제와 노작홍사용 창작단막극제, 노작문화상, 문예지 <시와 희곡> 발행 등이 그것이다. 작가를 갈망하는 시민들을 위한 문예 강좌와 방학 청소년 문예교실, 우리 동네 작은 영화관, 문학이 함께 하는 음악회, 시인과 함께 걷는 시숲 길, 문학현장 답사, 산유화극장 정기 공연, 시민극단 연극동아리 등도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성시 미디어센터는 다양한 콘텐츠들을 갖추고 시민들에게 쉽게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있는 미디어 쉼터(체험, 상영, 전시 등)를 제공하고 있는 공간이다. 사실 미디어센터는 시와 수필, 소설 등에 이어 희곡과 연극까지 문학의 모든 장르를 섭렵했던 노작의 문학 활동에서 영감을 받아 설립됐다. 미디어시네마 운영을 통해 영상 문화 플랫폼 기반을 마련하고, VR체험 운영을 통해 시민의 4차 산업체험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 동탄신도시에 밤이 찾아오고 있다. 땅거미가 뉘엿뉘엿지면 노작로에도 하나둘씩 불이 켜지고 시민들은 총총걸음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 수원화성신문


동탄복합문화센터도 노작로에 위치한 문화공간이다. 반석아트홀과 동탄아트스페이스, 화성문예아카데미, 스포츠센터, 다목적실 등을 갖추고 시민들에게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화성시 관계자는 ‟이 공간은 최대 무대시스템과 대연습실을 갖춘 공연시설인 반석아트홀을 비롯해 각종 전시가 이뤄지고 있는 동탄아트스페이스와 각종 문화강좌들이 진행되는 화성문예아카데미 등을 통해 문화의 향기를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탄 신도시는 서슬 푸른 일제강점기에도 굴복하지 않고, 변절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온 몸으로 일제의 압제에 저항했던 민족시인 노작 홍사용 선생의 문사적(文士的)이고 올곧은 조선의 선비혼이 투영된 고장이다. 그 중에서도 반석산 기슭은 시인의 유년시절과 창년 시절 문학혼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그런 곳에 노사홍사용 문학관과 노작공원, 노작로 등을 비롯해 동탄복합문화관과 화성 미디어센터 등 문화공간들이 설립됐다. 비록 설립은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기업과 화성시 등 관(官)이 주도했지만, 앞으로 이들 공간을 통해 후세들에게 시인의 늠름한 문학정신을 물려주는 것은 온전히 현재를 살고 있는 시민들의 몫이다. 적어도 반석산을 걸을 때, 잠깐이라도 민족시인 노작 홍사용 선생을 기억할 수 있음은 행복한 유산이다. 마로니에 거리가 그렇듯 말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수원화성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