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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행윤칼럼] 서초동 vs 광화문?…正義와 不義, 선택의 대상 결코 아냐

출구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 구하기 위해선 실종된 정치 복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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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행윤기자
기사입력 2019-10-08

 


‟어느 날 밤 경찰인지 공비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또 마을을 찾아들어왔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우리 집까지 찾아들어와 어머니하고 내가 잠들고 있는 방문을 열어젖혔다. 눈이 부시도록 밝은 전짓불을 얼굴에다 내리비추며 어머니더러 당신은 누구의 편이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때 얼른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전짓불 뒤에 가려진 사람이 경찰대 사람인지 공비인지를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청준 선생의 중편소설 <소문의 벽>의 한 대목이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매일 밤 누군가에 의해 남쪽과 북쪽 가운데, 어느 한쪽에 대한 선택을 강요받는다. 권총에 총알 장전 여부를 모르는 상태에서 방아쇠가 당겨지는 러시안 룰렛게임. 그 (“남쪽이냐, 아니면 북쪽이냐”라고 묻는) 선택 강요는 러시안 룰렛게임보다 더 무섭고도 혹독했다. 역대급으로 잔인했던 흑백논리였다.

 

문을 연 사람이 경찰이라고 치자. 그런데, ‟김일성 만세”를 외쳤다고 치자. 아니면 공비가 방문을 열어젖혔는데, “이승만 만세”를 불렀다고 치자. 곧바로 황천행일 터이다.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대목이다. 그렇게 양자택일(兩者擇一)을 강요받았던 문항은 과연 실체적인 진실이었을까. 아니면 왜곡된 팩트였을까.

 

지금도 사위(四圍)가 칠흑(漆黑)같이 어둡고 컴컴한 밤에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고 불을 비추면서 누구편인지를 묻는다면 끝 모를 절망과 공포의 나락으로 추락할 게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전쟁이 한창이었던 시절이었다면 얼마나 더 무섭고도 절망적이었을까.

 

필자는 까까머리 고교생 때, 자율학습 시간에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몰래 이 작품을 읽고는 숨이 탁 막혔었다. 그때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만약 이 땅에서 또 다시 전쟁이 발발한다면 비슷한 상황을 겪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뜬 눈으로 밤을 새웠던 기억도 생생하다. 벌써 반세기도 훌쩍 지난 시절의 얘기다.

 

하긴 박정희 정권 말기의 어른들도 어쩌면 한국전쟁 때보다 더 무서운 선택을 강요받았을지도 모른다. “유신에 찬성하느냐, 아니면 반대하느냐?” 학교에서조차 선생님으로부터 ‘유신은 한국형 민주주의’라는 궤변을 교육받던 시절이었다. 

 

우리 사회가 하루가 다르게 급속하게 발전하던 산업화에 이어 학생들이 독재 타도를 외치면서 거리로 나섰던 민주화운동 시기를 거치면서 이 같은 강요된 선택은 한동안 자취를 감추는 듯 했다.  민주화가 한참 진행되던 시기에는 정당이나 정파 등은 강요받았을지 모르겠지만, 정의와 불의에 대한 선택은 강요받지 않았던 기억은 아직도 명쾌하다. 물론 민주화는 정의(正義)이고 독재는 불의(不義)라는 등식은 아직도 유효하다.

  

실체적 사실과 왜곡된 팩트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한다면 누구라도 신체의 아픔보다 더 격렬한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겠다.

 

한국전쟁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 66년이 지났는데도, 딱 그런 시대가 또 다시 도래했다. 다른 게 있다면 그때는 남쪽이냐, 아니면 북쪽이냐 등에 대한 선택을 강요받았다면 지금은 서초동과 광화문 집회 가운데 어느 한쪽에 대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서초동 집회 공감도(47.0%)보다는 광화문 집회 공감도(50.9%)가 더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불과 3.9% 차이로 오차범위 내에 있다. 두 집회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정치가 실종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회가 거리로, 광장으로 나간 국민들을 돌아오게 하려면 여의도 정치가 복원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남북문제도 표류하고 있고, 경제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데, 정치는 산으로 올라가고 있다. 산더미처럼 쌓인 시급한 민생사안들은 또 어떤가. 온통 조국 법무부장관 사태에 묻히고 있다.

 

필자를 포함해 여러 인사들이 벌써 수 십 차례 권고하고, 경고했겠지만, 정치권이 하루빨리 머리를 맞대지 않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혜안은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에서 방황하고 있다. 국정도 원활하게 가동돼야 하고, 조국 법무부장관에 대한 수사도 제대로 진행돼야 하겠지만, 검찰 개혁도 부단히 추진돼야 한다. 매일 밤마다 남쪽이냐, 북쪽이냐 등에 대한 선택을 강요받아야 했던, 그 엄청나고도 끔찍했던 시절로 다시 되돌아가지 않으려면 말이다. 이청준 선생의 <소문의 벽>에서 제시됐던 상황은 그래서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허행윤 수원화성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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