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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행윤칼럼] 동북아 정세 긴박해지는데, 언제까지 정쟁만 벌이고 있을 것인가?

中日 인민해방군·자위대 갈수록 전력 강화…이젠 차분하게 미래 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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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행윤기자
기사입력 2019-10-04

 


중국(中國)은 도대체 언제부터 중국으로 불렸을까? 이 같은 우문(愚問)에 대한 중국인들의 현답(賢答)은 명쾌하다. “우리 스스로 중국이라고 불러본 적은 결코 없다.” 내친 김에 또 어리석은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왜 나라 이름에 클 대(大)를 쓰지 않고, 중간 크기 정도를 뜻하는 중(中)을 썼을까? 이 질문에 대해 중국인들은 “중(中)은 지구의 한복판이자 중심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와 가깝지만, 먼 나라였다. 그만큼 우리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영어로 표현하면 ‘No chains to unlock’의 관계였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2천200여 년 전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한(漢)나라를 건국한 때부터 대륙을 통일한 왕조에 대해 중국으로 불러왔다. 거꾸로 얘기하면, 중국이 주변 국가들로부터 중국으로 불리기 시작한 세월은 2천200여년이 된 셈이다.

 

엊그제(10월1일) 중국,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후난성(湖南省) 출신 공산주의자 마오쩌둥(毛澤東)이 사회주의혁명을 통해 건국한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 70주년을 맞았다. 중국 얘기를 꺼낸 까닭이다. 인민이라는 단어와 공화국이라 단어가 들어간 국호 대신, 이 나라를 중국이라는 두루뭉술한 대명사로 부르는 까닭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좌파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요즘이기 때문이다. 
      
국내 언론들은 중국의 건국 70주년 기념행사 소식을 단신으로 처리했지만, 이 나라에게 매년 10월1일은 제일 비중이 큰 궈칭졔(國慶節)다. 중국은 매년 10월1일이면 베이징(北京)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그들의 군대인 런민졔팡진(人民解放軍) 열병식을 연다. 중국은 특히, 올해 열병식에 대해 나름 의미를 부여했다. 그것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 1일 열린 올해 열병식에는 병력 1만5천 명이 참가했다. 지난 2015년 9월3일 항일전승 70주년 기념식 때의 1만2천 명보다 3천 명이 더 많은 숫자다. 주목할 건 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조선)을 돕는다는 뜻인 캉메이웬차오(抗美援朝) 전쟁으로 부르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과 싸워 전과를 올린 중국의 여러 부대들이 열병식에 대거 참가했다는 점이다. 미국과 총성 없는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어서 미군과 싸워 이긴 경험들을 강조하고 싶은 속내로 읽히는 대목이다.

 

우선, 올해 열병식에는 한국전쟁 당시 상감령 전투에서 공을 세운 황지광(黃繼光)의 이름을 딴 부대인 황지광반의 반장인 청창(程强)이 참가했다. 상감령 전투의 중국군 영웅 황지광이 생전에 소속됐던 낙하산병 제15군을 주축으로 한 공군부대도 도보 행진에 나섰다. 황지광은 상감령 전투가 한창이던 1952년 10월 미군의 총구를 몸으로 막다 21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이후 ‘특급 영웅’ 칭호를 받았으며 1962년에는 고향인 쓰촨(四川)성에 ‘황지광 기념관’이 설립되기도 했다. 청창은 지난 2008년 원촨(汶川) 대지진 때 ‘황지광 영웅중대’ 구호를 받았던 당시 12세 소년이었다. 당시 그는 ‘커서 (황지광 이름을 딴) 낙하산 부대원이 되고 싶다’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서있어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 런민졔팡진 총사령관이던 펑더화이(彭德懷)로부터 ‘만세군(萬歲軍)’ 칭호를 받은 82집단군(과거 38군)도 열병식에 참가했다. 38군은 1950년 11월 미 8집단군의 퇴로를 막아 미군 1만1천여 명을 사살했다고 주장한다. 펑더화이가 38군을 칭찬하는 전보에 ‘제38군 만세!’라고 적어 이후 ‘만세군’ 칭호를 얻게 됐다.

 

미군과 공중전을 벌였던 공군 4사단도 참가했다. 이 부대는 1951~53년 사이 북한 서북부 압록강과 청천강 사이에서 벌어진 ‘미그 앨리(Mig Alley)’ 공중전에 참전,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미그 앨리’는 구 소련제 미그-15와 미 공군의 F-86 세이버 전투기가 치열한 공중전을 벌인 지역이다. 당시 넓지 않은 공간에서 제트기 간의 대규모 혈전이 벌어졌으며 중국은 1951년 1월29일 미군의 F-84 전투기를 처음으로 격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열병식에 등장하는 중국의 영웅 부대는 모두 한국전쟁에서 미군을 상대로 커다란 전과를 올린 부대다. 현재 미국과 벌이고 있는 치열한 무역 전쟁에서 꼭 이기고야 말겠다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베이징 외교가의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시 주석은 이날 열병식에서  “과거에는 무기는 적고, 패기는 많았는데 현재는 무기가 많아졌으니 패기도 더 많아지고 또 더 강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중국 건국 100년을 맞는 오는 2049년까지 세계 최강의 군대를 양성하려는 ‘창진멍(强軍夢)’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 런민졔팡진(人民解放軍)의 군사력만 비교했지만, 역시 우리와 가깝고도 먼 이웃인 일본도 자위대를 독자적인 전쟁수행이 가능한 집단으로 만들기 위해 꾸준히 전력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예사롭지 않은 까닭이다.

 

상황은 이런데도 우리 정치권은 정쟁만 일삼고 있다. 정쟁은 단순한 정쟁 수준을 넘어 전쟁 수준으로 넘어선 지 오래다. 진영논리는 이제 집회 참가자 숫자놀음에 치중하는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는 모양새다.

 

다행스럽게도 중단됐던 북미협상이 다시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연내 3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디테일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단 한반도 핵문제는 다시 타결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문제는 갈수록 팽창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군사력이다. 무시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여야와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이제는 머리를 맞대고 차분하게 나라의 미래를 토론하는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언제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허행윤 수원화성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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